크리퀘션-창의성질문토론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이란?

심재우-에스비컨설팅 2019. 12. 10. 15:32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인간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살기 원했고

이것을 얻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특히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시도를 했다.


그러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이 무엇이기에 이것을 원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확인하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시공간은 무엇인가?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이란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그토록 열망했을까?


인간 중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산 사례가 있었을까?


이제부터 위 질문들을 하나씩 다루어 보자.




1) 시공간은 무엇인가?

시공간은 시간과 공간을 합친 말이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은 틀렸다”.


이렇게 저항하는 근거로 시계를 거론한다.

즉 시계를 통해서 시간을 볼 수 있다고.


그런데 시계는 추상적인 시간을 인간들이 삶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하나의 도구이고 약속의 산물일 뿐이지 시간이란 개념을 정확히 증명하는 건 아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가 낮 12시 30분이라면, 정말로 여러분이 위치해 있는 세상의 시간이 낮 12시 30분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지구의 경도에 따라 시간대를 구분해 놓은 국제적인 약속이고 이것은 인간이 임의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면 추상적인 개념인 시간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시간이 지배하는 세계에 있다는 것은


“시간 세계에 속한 모든 것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정지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흐른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들(생물과 무생물도 포함)은 시간의 지배를 받고, 따라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한다.

변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Status)가 달라진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나이를 먹고 영(생각)과 육(신체)이 변한다.


아래 이미지는 시간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필자가 직접 그림 것이다.





가운데 원은 지구를 의미하고, 지구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 곳으로, 여기에 속한 모든 삼라만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변한다.


인간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순간부터 지구상의 존재하기 시작하고, 시간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 수정란은 성장하고 변한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가 인간이냐 아니냐로 찬반의 논란이 있는데,

만약에 시간의 지배를 받는 것(변하는 것)을 인간의 특성 중 하나로 정의한다면, 태아도 시간의 지배를 받으므로 인간의 특성을 갖는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아의 인간 여부는 본 글에서 다룰 내용이 아니므로, 태아와 시간과의 관계성만 설명하는 것이니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시간 세계로 속하고, 죽을 때까지 변하기 시작한다.


즉, 탄생은 시간 세계로 오는 것이고, 죽음은 시간 세계(현세)를 벗어나 영원 세계로 이동하는 것이다.


시간 세계는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고, 사람마다 시간 세계에 머무르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이것이 인간의 수명(Lifetime)이다.


사람마다 수명이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시간 세계를 말할 때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로 우리에게 익숙한, 초, 분, 시, 년, 월, 일처럼 물리적으로 측정되는 시간이며, 양(Quantity)을 가지므로 시간의 길이와 간격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흐르고 변화되는 시간 세계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로 순간이나 타이밍을 의미하며 사건이나 이벤트에 해당되는데, 질(Quslity)을 가지므로 길이나 간격이 있는 게 아니고, 순간(Moment)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뉴톤이 사과나무 밑을 걷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개념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여러분이 무언가 새로운 개념이나 교훈을 깨닫는 순간을 말한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목욕을 하다가 몸의 부피만큼 불이 넘쳐 흐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레카(Eureka)”를 외친 그 순간이 카이로스다.



결국 모든 인간들은 일생 동안 수많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경험하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시간의 세계와 영영 이별을 한다.


시간의 의미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아래에 있다.








모든 인간은 카이로스인 탄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세상에 태어나고,

크로노스인 인간수명 동안 세상에서 살면서 변화(지적 성장을 하고 나이를 먹고 늙는 것 등)한다.



세상에서 살아 가는 동안 겪는 변화(성장)의 크기는 사람마다 모두 다른데,

누군가는 많이 변하고 성장(High로 그려진 파란색 곡선)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변화의 크기가 작기(Low로 그려진 붉은색 곡선)도 하다.


변화의 크기는 본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여러분의 삶이 어떤 곡선을 가질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생 동안 수많은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를 경험하는데,

이들 두 가지 개념을 어떻게 만들고 경험하는 가에 따라 변화와 성장의 크기가 달라진다.


변화의 크기를 키우려면 수많은 카이로스를 경험해야 하고, 카이로스는 우연이 나타나는게 아니고, 노력과 인내를 통한 수많은 크로노스를 시도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고(카이로스) 시간 세계와 이별한다.



이제 공간(Space)의 개념을 다루어 보자.

공간의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아래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공간은 어느 영역을 의미하는데,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되며,


하나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거나 경험하고 살고 있는 이 세상(현실, 이승) 공간으로,

우리가 일생 동안 살아가는 곳이다.


우리가 발을 디디며 살고 있는 땅으로 가시적이고 우리들의 필요함(물, 공기, 햇빛, 음식 등)이나 

부족함(영과 육의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 영역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공간으로 상상만 가능한 하늘(저승)이다.


이 곳은 현실에서 필요한 것을 무한정으로 공급하는 또 다른 세상이다.


종교적으로는 창조주, 조물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앞에서 시간의 개념을 설명할 때 거론한 탄생과 죽음도 공간 개념에서 사용되는데,

인간이 세상에 탄생할 때, 영(정신)과 육(신체)을 갖고 태어난다.


영은 하늘에서 받고, 육은 세상에 속한 부모에게서 받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는 이 세상이라는 공간(현실)에 속해서 살아 간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면서 인간의 영(정신)은 태어날 때 왔던 하늘로 가고, 육(신체)는 현실의 땅으로 돌아간다.


땅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변화와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인간의 한 부분을 이루기도 한다. 결국 부모라는 인간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땅에 속해 있고, 땅으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도 영향을 받는다.




2)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이란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그토록 열망했을까?”


앞에서 설명한 시공간 중에서 인간이 사는 세상은 유한한 시공간이다.


그래서 누구든 인간은 태어나서 시간 세계에 있는 동안 변하고, 현실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받다가, 죽음에 이르면 시간 세계와 현실 세계를 떠난다.


즉, 모든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사는 숙명을 갖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지 않고 영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세상(현실)에서 속한 모든 것은 반드시 수명을 다하고 사라진다.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나 조물주,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이 시공간을 초월하고 싶다는 것은 창조주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3) 인간 중에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산 사례가 있었을까?


시공간을 초월했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한다는 의미인데,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간 중에서 영생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즉, 인간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한 사람은 없다.


중국의 진시황도 영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했지만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것은 세속적인 삶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세속적인 삶은 물질을 추구하고 부와 명예를 쫓는 삶이다.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남들에게 물질적인 자랑이나 과시를 하며 사는 삶이다.



시공간의 지배를 받는 현실 세계에서 누구나 변화되는데,

변화가 단지 나이를 먹고 늙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고,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고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으로 발전되고 변화하도록 역할을 하는 삶을 살도록 변화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시공간을 초월하는 삶을 살 계획인가?




2019년의 마지막 12월과 대망의 2020년을 맞이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계획을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